[사설] “기후공시, 늦춘 대가… 전남 철강이 먼저 맞는다”

김재우 논설위원 (前 여수광양항만관리 대표)

| 2025-12-01 11:35:42

기후공시 지연의 비용, 수도권이 아닌 전남이 먼저 치른다
탄소 다배출 산업집적은 위기가 아니라 전환 이익의 최대 잠재력이다

김재우 논설위원(前 여수광양항만관리 대표)

세계 산업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 이제 기업이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는 더 이상 ‘자체 홍보 자료’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은 기후 대응 역량을 수출 경쟁력으로 판단하고, 금융시장 또한 이 정보를 리스크와 수익의 기준으로 삼는다. 기후 대응이 도덕적 가치를 넘어 경제의 언어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변화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2025년부터 대기업 기후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에는 전 상장사로 확대하겠다던 정부 계획은 지난해 미뤄졌다. 시기도 불투명하다.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책이 선택한 지연이다. 그리고 그 대가가 어디로 향할지는 이미 분명해지고 있다.

바로 전남이다.

전남 경제의 한 축은 철강이다. 광양제철소를 중심으로 철강·화학 수출기업이 집중돼 있고, 지역 제조업 종사자 10만 명 이상이 이 산업에 기대고 있다. 전남이 흔들리면 지역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그만큼 전남은 대한민국 산업구조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런데 이 최전선이 정책 공백 속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곳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산업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한다. 탄소배출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가장 불리한 기본값을 적용받고 수출 비용이 그만큼 높아진다. 이 상황에서 기후공시 늦춘 한국은 정책 공백의 비용을 기업과 지역이 직접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결과는 수출 경쟁력 약화, 고용 불안, 지역경제 침체다. 전남이 ‘정책 지연의 1차 피해 지역’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남은 가장 큰 기회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모여 있다는 것은, 전환의 이익도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전남이 선제적 변화를 선택한다면 한국 철강 산업 전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첫째, 광양을 중심으로 기후 데이터 허브와 배출 검증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공장별·제품별 배출량을 국제 기준에 따라 정확히 산정하고, 글로벌 시장에 당당히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다.

둘째, 철강산업을 저탄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스크랩 고도화, 수소환원 제철, 폐열 회수 시스템 등 기술은 이미 개발 단계에 있다. 전남이 실증하고 확산한다면 한국형 저탄소 철강 모델의 표준이 될 수 있다.

셋째, 기업이 변화를 ‘부담’이 아니라 ‘이익’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금융·세제 인센티브를 체계화해야 한다. 기후공시를 하면 우대금리를 주고, 탄소감축하면 세제 혜택을 주며, CBAM 대응 기업에는 수출보험을 강화해야 한다. 정책이 기업의 전환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환경운동으로 분류해선 안 된다.
이는 전남 수출 전략이며, 지역 일자리와 세수를 지키는 전략이다. 중앙정부가 대신 부담해주지 않는다. 기후공시를 늦춘 대가는 서울이 아니라, 현장에서 땀 흘리는 전남의 노동자에게서 시작된다.

지금 전남은 골든타임 위에 서 있다.
우리가 기후공시를 피한다면 위험이 되고,
우리가 기후공시를 활용한다면 기회가 된다.

전남은 첫 피해자가 될 수도,
첫 승자가 될 수도 있다.

선택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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