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에서 누락된 노인들
CoSPA
press@focusnjn.com | 2026-09-15 14:07:47
배워서 따라오라는 정책을 넘어, 정부와 기업의 적응 책임을 물어야
새 자동차를 구입하면 운전자는 낯선 기능들과 마주한다. 전자식 기어와 주차브레이크는 물론이고 차선유지장치, 자동제동장치, 주행보조시스템, 음성 내비게이션까지 차량마다 작동방식이 다르다. 간단한 설명을 들은 운전자는 곧바로 도로에 나서고, 결국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달리면서 계기판에 뜬 표시가 무엇인지, 기능을 어떻게 켜고 끄는지를 익혀야 한다.
젊은 사람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인데 고령 운전자나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편을 넘어 안전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는 운전자가 기능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동차는 갈수록 복잡해졌지만 제조사와 판매자의 설명 책임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기술을 배우는 비용과 실패의 위험은 운전자 개인에게 넘어갔다.
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매장마다 다른 키오스크가 기다리고, 병원마다 예약과 접수 방식이 다르며, 기차표와 버스표도 온라인 예매가 중심이 됐다. 농어촌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다니던 버스가 수요응답형 콜버스로 바뀌고, 길에서 손을 들어 잡던 택시는 호출 앱 속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제도는 이전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다고 홍보된다. 그러나 호출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오지 않는 버스는 없는 버스와 다르지 않다. 앱으로만 예약할 수 있는 병원은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멀리 있는 병원과 다르지 않고, 무인발권기만 남은 역은 기계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문이 닫힌 역과 같다.
디지털 전환이 갈라놓은 두 개의 노년
같은 고령층 안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다르다. 스마트폰으로 금융 업무와 병원 예약을 처리하고 생성형 인공지능까지 활용하는 ‘업데이트 시니어’가 있는 반면, 서비스가 바뀔 때마다 생활의 문이 하나씩 닫히는 노인들도 있다.
이들을 단순히 디지털에 취약한 사람이라고만 불러서는 문제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다. 배우려는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서비스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교육과 지원, 대체수단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누락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업데이트 누락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업데이트 누락세대는 기술에 뒤처진 노인이 아니다. 기술이 앞서가는 동안 정부와 기업이 기다려주지 않은 사람들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서는 노인의 67.2%가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 역시 일반 국민의 70%대에 머물러 저소득층, 장애인, 농어민 등 다른 취약계층보다도 낮게 나타난다. 일부 노인의 예외적인 적응 실패가 아니라 고령층 다수가 겪는 구조적 문제라는 뜻이다.
정책보고서에서는 이들을 ‘디지털 적응부담 고령자’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신설·변경되면서 새로운 이용방법을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하거나, 이용 과정에서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 타인의 도움 또는 안전상의 부담을 겪는 고령자를 말한다.
기존의 ‘디지털 취약계층’이라는 표현이 개인의 역량 부족에 초점을 맞춘다면, ‘디지털 적응부담 고령자’는 서비스 변경으로 새롭게 발생한 부담과 그 서비스를 바꾼 기관의 책임까지 함께 드러낸다. 누구의 능력이 부족한지를 묻는 데서 벗어나, 누가 적응비용을 발생시켰고 누가 그 비용을 책임져야 하는지를 묻게 하는 개념이다.
왜 노인만 계속 배워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내놓은 대표적인 해법은 교육이다. 과거 동사무소와 주민센터에서 운영했던 컴퓨터 교실은 현재 AI디지털배움터와 지방자치단체의 스마트폰 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6년에는 전국에 69개의 AI디지털배움터 거점센터가 운영되고 주민센터와 복지관, 경로당 등을 찾아가는 교육도 진행되고 있다.
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교육만으로 디지털 소외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오늘 배운 키오스크와 내일 찾아간 식당의 키오스크가 다르고, 한 지역에서 익힌 콜버스 앱과 옆 지역의 호출 방식이 다르다. 병원과 은행마다 본인인증 절차도 다르며, 휴대전화의 운영체제가 바뀌면 버튼의 위치와 메뉴 구성도 달라진다. 자동차는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새로운 기능이 생기거나 기존 기능의 작동방식이 달라진다.
사회는 계속 업데이트되는데, 그때마다 노인에게 다시 공부하라고 요구한다. 기술이 복잡해진 책임도, 서비스가 갑자기 바뀐 책임도, 기존 창구가 사라진 책임도 모두 이용자의 학습 부족으로 돌린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만족도는 지역에 따라 98% 안팎으로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교육이 만족스러웠다는 것과 한 달 뒤 혼자 병원을 예약하고 콜버스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현재의 성과평가는 몇 명이 교육받았는지, 수업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를 주로 묻지만 정작 교육받은 사람이 낯선 기기 앞에서도 생활을 스스로 이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는 충분히 확인하지 않는다.
왜 노인만 계속 배워야 하는가. 기술을 설계한 기업과 서비스를 바꾼 정부도 사람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는가.
편리함의 이익과 적응의 비용
디지털 전환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얻는 주체는 정부와 기업이다. 키오스크가 직원을 대신하고 앱이 창구를 대신하며 인공지능이 상담원을 대신한다. 정부와 기업은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이고 더 많은 업무를 빠르게 처리한다.
그러나 이용자는 새로운 기기를 배우고 앱을 설치하며 회원가입과 본인인증을 통과해야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자녀나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때로는 낯선 직원에게 비밀번호와 금융정보를 보여줘야 한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으면 서비스를 포기한다.
모바일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고령자는 우대금리와 수수료 면제에서 제외되고, 은행 창구를 찾아 더 먼 거리를 이동한다. 온라인 예매를 하지 못하면 좋은 시간대의 열차표를 구하기 어렵고, 병원 앱을 사용하지 못하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앱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할인과 우선권을 주면서 전화와 대면 창구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부담시키기도 한다.
기술의 이익은 서비스 제공자가 가져가고 기술의 학습비용과 실패 위험은 이용자가 부담하는 구조다. 디지털 전환이 고령층에게 새로운 부담을 만들었다면 그 부담을 줄이는 책임도 전환을 결정한 정부와 기업에 있어야 한다.
디지털을 사용하지 않아도 살아갈 권리
유럽연합은 유럽접근성법을 통해 발권기, 현금인출기, 결제단말기, 교통 앱과 전자상거래 등에 접근성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도 지방정부가 민간업체의 앱을 이용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접근성에 대한 최종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다고 본다. 기술적 기준을 충족한 앱이라도 특정 이용자가 사용할 수 없다면 다른 이용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2026년부터 「디지털포용법」을 시행하고 있다. 디지털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보장하고 무인정보단말기의 이용 편의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여전히 교육, 기술기준, 품질인증과 개선 권고에 무게가 실려 있다. 앱을 도입하면서 전화예약을 없애거나 무인발권기를 설치하면서 창구를 폐쇄하는 것까지 충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비디지털 접근권’을 제도화해야 한다. 행정, 교통, 의료, 금융, 통신과 같은 생활필수서비스에서는 앱이나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아도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전화로 콜버스를 예약하고, 병원에서 대면으로 접수하며, 무인역에서도 원격상담을 통해 승차권을 발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체수단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앱 예약은 24시간 가능하지만 전화예약은 평일 오전 두 시간만 받는다면 동등한 서비스가 아니다. 창구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수수료를 더 내고 더 오래 기다리며 할인이나 우선예약에서 제외된다면 그것 역시 디지털 차별이다.
비디지털 방식을 이용하더라도 비용, 처리기간, 이용시간과 서비스 범위에서 현저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디지털을 이용하지 않을 권리는 기술을 거부할 권리가 아니라 필수적인 생활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다.
서비스를 바꾸기 전에 사람부터 살펴야 한다
공공기관과 생활필수서비스 제공자가 새로운 앱과 키오스크, AI 상담을 도입하거나 기존의 전화·대면 방식을 폐지하려면 사전에 ‘디지털 전환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평가는 화면의 글자가 큰지, 음성안내 기능이 있는지만 확인하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실제 디지털 적응부담 고령자가 예약과 결제, 탑승과 접수까지 혼자 완료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본인인증에 실패했을 때 다른 방법이 있는지, 오류가 발생하면 이전 단계로 돌아갈 수 있는지, 도움이 필요할 때 즉시 사람과 연결되는지, 타인에게 개인정보를 보여주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서비스 이용에 실패했을 때 발생할 위험도 평가해야 한다. 음식 주문을 포기하는 것과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귀가할 버스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결과의 무게가 다르다. 의료·교통·금융·복지와 같은 생활필수서비스에는 일반적인 편의서비스보다 엄격한 기준과 대체수단을 요구해야 한다.
평가 결과 중대한 배제나 안전 위험이 예상된다면 이를 해소할 때까지 기존 이용방식을 폐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기술 도입을 막자는 것이 아니다. 새 방식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전화와 대면, 종이와 현금 같은 기존 방식을 일정 기간 함께 운영하자는 것이다.
기술의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서비스를 없애는 속도를 국민의 적응 속도와 맞추자는 말이다.
동네마다 생활디지털 주치의를 두자
교육체계도 달라져야 한다. 한 번 가르치고 수료증을 주는 방식으로는 끊임없이 바뀌는 생활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와 복지관, 도서관, 농협과 우체국을 연결해 ‘생활디지털 도움창구’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정해진 교재로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막힌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곳이어야 한다.
콜버스를 예약하지 못한 어르신에게는 실제 예약을 함께 해보고, 병원 앱의 본인인증이 막힌 주민에게는 문제를 해결해주며, 새 자동차의 첨단기능을 모르는 운전자에게는 제조사나 교통안전 교육기관을 연결해야 한다. 농어촌과 도서지역에는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찾아가는 이동형 지원이 필요하다.
이름을 붙인다면 ‘생활디지털 주치의’가 좋다. 몸이 불편할 때 동네 의사를 다시 찾아가듯 기술이 바뀌어 생활이 막힐 때마다 가까운 곳에서 반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성과평가도 몇 명을 교육했는지가 아니라 교육 이후 혼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측정해야 한다. 교육 직후 만족도가 아니라 한 달 뒤 콜버스를 예약할 수 있는지, 낯선 키오스크에서도 주문을 완료할 수 있는지, 병원 예약과 열차표 취소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기술이 사람을 기다려주는 사회
디지털 전환을 거스를 수는 없다. 되돌릴 필요도 없다. AI와 디지털 기술은 행정과 교통, 의료와 산업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시민의 삶을 바꿀 것이다.
그러나 좋은 기술이라고 해서 모든 도입 과정까지 저절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이동과 의료, 금융과 행정에서 밀려난다면 그것은 완성된 혁신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노인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이제는 기술과 서비스를 바꾸는 정부와 기업이 사람을 제대로 기다리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업데이트 시니어가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업데이트 누락세대는 기존에 이용하던 생활의 문이 하나씩 닫히고 있다. 이들을 디지털 적응부담 고령자로 정의하고, 그 부담을 측정하고 줄이는 일을 정부와 기업의 책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왜 노인만 계속 업데이트되어야 하는가. 서비스를 바꾼 정부와 기업도 설명하고 기다리고 도와야 한다. 국민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때까지 기존의 문을 닫지 않는 것, 그것이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디지털 포용이다.
노인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한 번 더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노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키오스크와 앱을 정부와 기업이 아무런 책임 없이 내놓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기술은 앞서 달릴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그 속도 때문에 뒤처진 국민을 길 위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 포커스N전남.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