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 ③ 당신의 시간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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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focusnjn.com | 2026-09-14 16:26:46
청년이 줄자 지방은 청년의 나이를 늘리기 시작했다
마흔다섯을 지원하는 것과 마흔다섯까지 청년이라 부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청년이 되기도 하고 중년이 되기도 한다.
청년기본법이 정한 청년은 19세 이상 34세 이하이지만 다른 법령이나 조례가 필요에 따라 연령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예외를 열어뒀다. 전남으로 가면 청년은 18세 이상 45세 이하이다.
마흔다섯도 청년이다.
34세라면 국가가 정한 청년의 끝에 서 있지만 전남에서는 11년을 더 청년으로 살 수 있으니 농담 삼아 표현하자면 꽤 긴 ‘청년 연장계약’이다. 그렇게 중고청년이 된다.
웃고 넘길 이야기 같지만 정책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청년의 나이를 어디까지 정하느냐는 누가 청년정책의 대상이 되고, 누가 일자리와 주거, 창업과 각종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여기서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20대와 30대가 지역을 떠나 실제 젊은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청년의 상한연령을 34세에서 39세, 다시 45세로 넓히면 행정상 청년정책의 대상자는 늘어날 수 있다.
청년은 줄었는데 행정상 청년은 늘어나는 역설이다.
마흔다섯 살을 지원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40대는 일자리와 주거, 자녀교육과 부모부양이 한꺼번에 겹치는 세대이고 직장에서는 퇴직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자영업자는 경기의 충격을 직접 받는다. 지원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과 청년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청년정책이 별도로 존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학교를 벗어나 처음 노동시장에 들어가고 첫 소득을 만들며, 처음 자신의 집을 구하고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시기에 겪는 어려움이 다른 연령층과 다르기 때문이다. 청년정책은 본래 그 출발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방에서 청년이 사라지자 청년이 왜 떠나는지를 해결하기보다 청년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역의 20대가 대학 때문에 떠나고, 지역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첫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간다. 어렵게 지역에서 취업한 사람도 더 높은 임금과 경력의 기회를 찾아 다시 떠난다. 그 상황에서 청년의 나이를 45세까지 넓히면 청년사업에 참여할 사람은 많아지고 청년시설의 이용대상도 넓어진다.
그러나 그 변화가 스물다섯 살을 돌아오게 한 것은 아니고, 서른 살을 지역에 남게 한 것도 아니다. 좋은 첫 직장이 새로 생긴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청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청년의 정의가 늘어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방정부가 공개해야 할 숫자도 달라져야 한다. 청년사업에 몇 명이 신청했는지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실제 몇 살이 받고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 20대에게 얼마가 갔고 30대와 40대에게 각각 얼마가 갔는지를 보면 청년정책이 정말 누구의 출발을 돕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지방소멸을 판단하는 숫자도 마찬가지다. 청년센터 방문객보다 지역 대학 졸업생 가운데 몇 명이 지역에서 첫 직장을 얻었는지, 취업한 청년 가운데 몇 명이 3년 뒤에도 남아 있는지, 수도권으로 떠난 사람 가운데 몇 명이 다시 돌아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이 몇 살에 가장 많이 떠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스무 살 무렵 이탈이 집중된다면 대학과 교육환경을 먼저 살펴야 하고, 스물다섯 전후에 많이 떠난다면 일자리와 임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서른 무렵 떠나는 사람이 많다면 이야기는 다시 주거와 결혼, 돌봄과 생활환경으로 달라진다.
청년이 몇 살까지인지를 정하는 것보다 몇 살에 가장 많이 떠나는지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청년이 끝나는 나이를 계속 늘리는 것보다 청년이 떠나는 나이를 찾아 그 지점을 막는 것이 지방소멸 정책에 더 가깝다.
마흔다섯 살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면 지원하면 된다. 35세 이후 재취업과 직업전환에는 생애전환 고용정책을 만들고, 40대의 창업과 소득감소에는 중년 일자리정책을 만들면 된다. 자녀교육과 부모부양이 동시에 몰려오는 세대라면 그 시기의 부담을 겨냥한 가족·주거정책이 필요하다.
지원의 문을 닫자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이름과 목적을 정직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정책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여야지 현실을 보기 좋게 만드는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청년이 줄었다면 줄었다고 말하고 몇 명이 줄었는지, 몇 살에 떠났는지, 왜 떠났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 숫자가 불편하더라도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지방소멸 정책의 출발이다.
청년의 나이를 늘리는 것은 쉽다. 조례의 숫자 하나를 바꾸면 된다. 그러나 스물다섯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다. 기업을 만들고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하며 지역에서도 경력을 쌓으면서 임금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주거와 문화, 교육과 의료의 격차를 줄이는 일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마흔다섯 청년시대에 다시 묻게 된다.
우리가 늘려야 할 것은 청년의 나이인가, 청년이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인가.
마흔다섯을 청년으로 만드는 지방보다 스물다섯이 떠나지 않는 지방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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