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문화산업은 절대적으로 수도권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청년 예술인은 창작보다 생존을 위해 수도권으로 향한다. 예술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지원금, 네트워크, 유통 플랫폼, 미디어 노출 등 모든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창작을 시작하더라도 작품을 알리고 수익을 창출하려면 결국 서울의 전시·공연·영상 유통망을 거쳐야 한다. 결국 지방 청년 예술인의 창작은 '생활형'에 머물고, 로컬 콘텐츠는 중앙 플랫폼에 종속된 채 부차적 서사로만 소비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라남도는 이 구조를 깨트리고 있다는 점이다. '전남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 '로컬 콘텐츠랩', '청년예술공간 여수 아트팩토리' 등은 단순한 지원금 배분을 넘어 예술을 지역경제의 순환축으로 삼으려는 시도다. 목포에서는 폐창고를 개조한 스튜디오에서 청년 예술인들이 음악과 미디어를 결합한 협업 작업을 이어가고, 순천에서는 지역 장인의 공예를 영상 콘텐츠로 재해석해 SNS와 연동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여수에서는 지역 관광과 예술 창작을 연결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로컬 콘텐츠가 '체험형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같은 시도들은 '예술이 곧 지역경제'라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전제한다. 예술을 소비하는 행정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벗어나 예술을 생산하는 산업정책의 한 축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다. 전라남도의 여러 지자체가 청년 예술인을 지역 브랜드, 관광 자원, 공동체 프로그램의 기획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이 지역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 스토리가 다시 산업과 인구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물론, 현실의 벽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청년 예술인 창작지원금은 대부분 1년 단위의 단발성 사업으로, 다음 해로 이어지는 연속성이 부족하다. 창작에서 유통, 매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의 창작공간이 2~3년 만에 문을 닫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의 생명은 '지속성'인데, 정책은 여전히 '행사형'에 머물러 있다.
또한 중앙정부의 문화산업정책, 특히 K콘텐츠 전략펀드나 지역콘텐츠기업육성사업은 규모와 구조 면에서 지역 청년 창작자에게 닿기 어렵다. 자부담 요건, 법인설립 의무, 매출 연계 평가 등 현실적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와 유통 구조는 서울로 집중되고, 지방 창작자는 여전히 공모사업의 '말단 수혜자'로 머문다. 콘텐츠 산업의 중심축은 커졌지만, 그 성장의 기반은 여전히 불균형하다.
그럼에도 전라남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전라남도는 지역 청년 예술인을 단순한 '지원대상'이 아닌 '로컬 브랜드의 파트너'로 설정하고 있다. 지역 상권·농산물·관광 자원에 예술적 콘텐츠를 입혀 브랜드를 새롭게 만드는 협업이 늘고 있다. 예술인이 지역 산업 구조 속에서 역할을 갖게 되면 청년은 머물 수 있고, 창작은 지역을 살릴 수 있다. 예술이 복지가 아니라 경제가 되는 순간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창작-유통-소비'를 잇는 로컬 콘텐츠 생태계다. 창작이 끝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유통되고 소비될 수 있도록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펀드나 기업지원사업도 서울 본사 중심이 아닌 '지역 파트너십 모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청년예술인이 제작한 영상이 지역 공공기관의 홍보물로, 지역 축제의 공식 콘텐츠로 활용되는 구조를 제도화한다면 창작이 곧 일자리와 수익으로 이어진다.
문화가 행정의 부속이 아닌 경제의 엔진이 될 때, 예술은 더 이상 지원 대상이 아니다. 지역의 예술인이 산업의 주체로 설 때, 그 지역은 더 이상 '지방'이 아니다. 전라남도의 청년 예술인들이 보여주는 실험은 단순한 로컬 이슈가 아니라 한국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예술을 산업으로, 지역을 무대로 전환하는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문화 균형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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