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이름이 아니라 그를 계승할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김대중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국 사회는 언제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가 남긴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를 둘러싼 근현대사의 아픔과 오래 남은 상흔들이 우리의 시간 속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넘어 이미 국가적 자산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최근의 ‘김대중대학’ 논쟁은 그 무게를 다루지 못한 채 정치적 소음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김대중을 기억하는가. 40여 년 전, 교도소에 갇혀 있던 시절조차 그는 이미 정보화 시대를 말했다. 컴퓨터가 사회를 바꾸고, 기술이 불평등과 기회를 동시에 확장할 것이라 예견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의 말은 예측이 아니라 관찰에 가까웠다. 시대의 끝을 내다보는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통찰이었다. 그래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굳이 외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오래 남아도 충분한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의 논쟁은 이런 본질에서 멀어져 있다. 순천대와 목포대의 통합 논의가 물꼬를 트자 어김없이 ‘김대중대학교’라는 교명이 등장했다. 정작 대학에 다닐 청년들은 조용한데, 그 대학을 다니지 않을 기성세대가 더 시끄럽다. 미래 세대를 위한 결정이어야 할 문제가, 과거의 향수와 정치적 상징을 되살리려는 경쟁처럼 보이는 이유다.
전남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의 교육감이 당선된 사례도 이 논쟁의 구조를 드러낸다. 교육정책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들은 투표권이 없다. 대신 김대중이라는 이름에 따뜻한 기억을 가진 60대 이상 세대가 투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당선 구조를 보면 지금의 교명 논쟁도 ‘기억하는 세대’와 ‘살아갈 세대’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대학은 결국 청년이 선택하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전공의 미래성, 취업 경쟁력, 학교 환경을 기준으로 대학을 고른다. 정치적 상징은 그 기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오히려 특정 인물의 이름이 대학 브랜드가 될 경우, 이념화된 조롱과 불필요한 논쟁이 신입생 모집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의 피로감을 공유하고 있다. 늙은 정치가 만든 갈등의 잔해를 젊은 세대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 방식으로는 어떤 미래도 열리지 않는다.
제15대 대통령취임식에서 연설하는 김대중대통령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단다고 새로운 김대중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인물의 위대함은 이름을 어디에 붙이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가 설계한 가치와 정신을 다음 세대가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호남 사람에게 김대중은 이미 국가적 자산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신적 지주다. 굳이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그 무게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름을 둘러싼 감정의 경쟁이 아니다. 대학의 본질적 역할을 고민하는 일이며, 청년들이 살아갈 미래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일이다. 대학 이름은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도구여야 한다. 지금처럼 과거의 상징을 소환해 세대 갈등을 반복하는 방식은 결국 모두에게 손해를 남길 뿐이다.
김대중은 이미 역사 속에 있다. 그를 기리는 길은 그의 이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다본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이어갈지에 달려 있다. 그 질문 앞에서 이제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성숙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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