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이 끝나면 바둑기사들은 바로 자리를 비우지 않습니다.
바둑판은 오히려 더욱 고요해지며 다시 꺼낸 돌로 한 수씩 더듬습니다.
어디가 패착이었는지, 왜 그 수가 나왔는지.
이 시간을 복기(復棋)라 부릅니다.
이기는 법은 판 위가 아니라 판 뒤에서 배웁니다.
복기는 변명 대신 재현을 택합니다.
승부의 열기를 식히고, 같은 좌표에 돌을 다시 올려봅니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한 칸 더 물러섰어야 했다.”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고, 기록을 다음 수로 바꾸는 일
그래서 복기는 패배의 의식이 아니라 재발 방지의 기술입니다.
그리고 오늘, 계엄 1주년.
대구의 한 연단 마이크에서 이런 문장이 흘렀습니다.
『“본인들이 사과했을 때 지난 대선 승리로 이끄셨습니까?
...(중략)
왜 계속 졌던 방식을 또 하라고 하십니까?”』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
사과와 책임을 ‘졌던 방식’이라 부르며
반성보다 결집을 권하는 말.
민주주의에서 사과는 패배의 기술이 아닙니다.
사과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복기판입니다.
사실을 올리고, 책임을 놓고, 제도를 고치는 절차.
그 시간들을 생략하면 같은 수가 되풀이됩니다.
바둑은 승패를 말할 수 있지만
정치는 끝내 기록으로 남습니다.
사과 한 줄, 책임 한 줄, 대책 한 줄
이 세 줄이 채워질 때 날짜는 비로소 과거가 됩니다.
“졌던 방식을 왜 또 하느냐”며
승부가 끝나고 복기없이 자리를 뜨는 정당은
다음에 벌어질 대국도, 다음에 벌어질 선거도 잃을것입니다.
글 / 이섬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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