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를 넘어 국민 다수의 삶을 책임지는 집권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최근 지지율 하락에 대해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했고, 연임을 위한 개헌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란을 낳은 특검법 조항에도 선을 그었다.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의 눈높이를 살피고 검증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겠다고 했다.
9월 18일 기자회견은 단순한 현안 설명회가 아니었다. 민심과 국정 운영 사이에 거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대통령이 인정하고, 국정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겠다고 밝힌 자리였다. 지지율 하락을 야당과 언론의 공세로만 돌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먼저 언급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은 민주당에 더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직접 사과하고 논란을 정리할 때까지 집권당은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는가. 그리고 잘못된 정책과 입법, 인사가 반복되는 동안 누가 책임졌는가.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은 하루아침에 떨어지지 않았다. 부동산과 전월세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정책 메시지는 흔들렸다.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싼 의혹이 이어졌으며 외교·안보 현안에서도 혼선이 발생했다. 이런 문제의 1차 책임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 행정부의 정책과 인사에서 발생한 문제까지 민주당에 떠넘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집권당은 정부가 놓친 민심을 전달하고,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며, 부적절한 인사가 국정의 부담이 되기 전에 걸러내야 한다. 대통령의 판단이 민심과 어긋날 때는 가장 먼저 “이 길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브레이크가 되지 못했다. 때로는 논란을 더 키우는 가속페달이 됐다.
국민이 집값과 전월세를 걱정할 때 정치권에서는 연임 개헌론이 흘러나왔다. 민생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의 정치적 에너지는 사법부와의 충돌, 검찰개혁의 속도, 당내 주도권 경쟁에 집중됐다. 국민은 자신의 삶을 물었는데 민주당은 권력과 사법의 언어로 답했다.
대통령 재판과 관련된 사건까지 특검이 공소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조작기소 특검법’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검찰의 정치적 기소를 바로잡는 장치라고 설명했지만, 국민에게는 집권당이 대통령 개인의 사법적 부담을 입법으로 덜어주려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개혁은 국민의 권리를 넓힐 때 정당성을 얻는다. 자기편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의심받는 순간 개혁은 특혜로 읽힌다. 결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특검의 공소취소 권한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이 선을 긋기 전에 민주당이 먼저 멈췄어야 할 일이었다.
인사 문제에서도 민주당은 민심을 적극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쌓이고 부정적 여론이 분명해진 뒤에도 당은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한 다음 날에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물러났다.
잘못된 인사를 방치하는 것은 대통령을 돕는 일이 아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후보자의 거취를 정리하고, 인사검증 실패의 원인을 찾아야 대통령의 국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마지막 결정을 대통령에게 미루는 것은 책임정치가 아니다.
이런 일이 반복된 배경에는 민주당이 바꾸지 못한 정치의 방향이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대치하고 탄핵 정국을 거치며 강한 대오와 지지층 결집으로 성과를 얻었다. 당시에는 공격과 단결이 필요했다. 그러나 집권당에는 야당과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야당은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면서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지만, 집권당은 정책의 결과로 평가받는다. 야당에는 결집이 힘이지만 집권당에는 조정과 절제, 타협과 책임이 더 중요하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민주당의 정치 방식은 충분히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반대편과 싸우는 데 익숙했고, 정부 내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는 서툴렀다. 국정 운영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야당과 언론, 검찰과 사법부의 공격을 먼저 의심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국민 다수의 마음을 다시 얻기보다 핵심 지지층을 더 강하게 결집하려 했다.
그 중심에 팬덤정치가 있다.
정치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는 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산이다. 문제는 지지가 감시를 대신하고, 충성이 판단의 기준이 되며, 다른 의견을 배신으로 몰아붙일 때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잘못까지 옹호하고 내부의 비판자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참여는 팬덤으로 변한다.
팬덤정치는 정치인의 시선을 국민 전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묶어놓는다. 정치인은 말없이 떠나는 중도층보다 즉각적으로 항의하는 강성 지지층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보다 지지층이 원하는 구호를 선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보다 상대 진영과 더 거칠게 싸우는 정치인이 환호받는다.
그 결과 정치는 점점 시끄러워지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사라진다.
잘못된 법안을 추진해도 “지지자들이 원했다”고 말한다. 무리한 인사를 옹호해도 “개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정책이 실패하면 결정의 문제를 돌아보기보다 야당과 언론의 방해를 탓한다. 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대통령의 뜻을 따랐다고 하고, 대통령 주변은 당과 지지층의 요구였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결정한 사람도, 제동을 걸지 않은 사람도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모두가 충성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팬덤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정치인을 오만하게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정치에서 책임의 주체를 지워버리는 데 있다. 지지층의 박수를 국민의 동의로 착각하게 만들고, 내부의 반대 목소리를 제거해 잘못된 판단을 수정할 기회마저 없앤다.
청와대가 판단하고 민주당이 방어하며 강성 지지층이 승인하는 구조에서는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는 점점 편안해지고, 국민이 느끼는 불편은 점점 커진다. 지지율이 떨어져도 누구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책임을 묻는 목소리마저 정권을 흔드는 공격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위기는 충성하는 사람이 부족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결정에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사라지고, 그 결정의 결과를 책임질 사람마저 사라졌기 때문에 시작됐다.
이번 기자회견 이후 민주당이 바꿔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첫째, 정치를 바라보는 방향부터 돌려야 한다. 강성 지지층은 민주당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민주당이 책임져야 할 국민의 전부는 아니다. 집권당의 결정 기준은 지지층의 박수갈채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삶과 국가 전체의 이익이어야 한다.
둘째, 대통령 개인을 방어하는 정치와 정부의 성공을 돕는 정치를 구분해야 한다. 대통령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법 문제와 연결된 입법을 밀어붙이면 대통령을 논란의 중심으로 끌어들일 뿐이다. 대통령의 성공을 돕는 길은 모든 판단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법안과 인사를 당이 먼저 걸러내는 것이다.
셋째, 당내 이견을 배신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내부 비판이 사라진 정당은 강한 정당이 아니라 잘못을 고칠 수 없는 정당이다. 의원들이 지지층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고 정책과 인사에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당 지도부도 다른 의견을 해당 행위로 몰기보다 중요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넷째, 결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누가 정책을 제안했고, 누가 법안을 주도했으며, 누가 인사를 검증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실패했을 때는 야당과 언론을 탓하기 전에 판단 과정과 책임자를 공개해야 한다.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다.
다섯째, 당의 중심 의제를 민생으로 돌려야 한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대통령의 다음 임기가 아니라 다음 달의 전월세와 대출이자, 일자리와 물가다. 사법개혁도 필요하지만 국민의 삶을 밀어내면서까지 정치의 전면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민생이 뒤로 밀리는 순간 개혁마저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오해받는다.
이번 기자회견만으로 민심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과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정부 정책이 달라져야 하고, 민주당이 정치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더 듣겠다고 했는데 민주당이 다시 팬덤의 박수와 진영의 언어에 기대면 기자회견은 일회성 위기관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응원단도, 팬덤의 대리인도 아니다. 국민의 불편한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청와대의 판단이 잘못됐을 때 국정의 방향을 바로잡으며, 그 결정의 결과에 책임져야 할 집권당이다.
대통령의 모든 결정을 옹호하는 정당은 잠시 대통령을 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잘못된 결정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정당만이 대통령과 정부를 실패에서 지킬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제 민주당이 답할 차례다.
박수를 좇는 정당으로 남을 것인가. 책임지는 집권당으로 다시 설 것인가.
이번 기자회견의 진정한 성패는 대통령이 얼마나 잘 말했느냐가 아니라, 민주당이 팬덤의 정치에서 책임의 정치로 얼마나 과감하게 방향을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포커스N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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