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퇴직연령은 있는데 왜 사회진입의 시간에는 목표가 없는가
더 오래 일할 권리와 제때 시작할 기회를 함께 보장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퇴직할 나이가 있다. 법정 정년이 있고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도 있으며, 청소년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나이를 정하고 청년이 몇 살까지인지도 법과 조례로 정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는 없다.
사람이 언제쯤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다.
몇 살까지 일할 것인지는 국가적 의제가 되는데 몇 살쯤 첫 직장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지는 개인의 문제로 남겨져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1년을 기다리든 2년을 기다리든, 취업시험을 준비하다 서른이 되든, 첫 직장을 얻고도 부모로부터 독립할 만큼 벌지 못하든 그 시간은 각자가 감당한다.
우리 사회가 정년의 1년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청년의 1년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한 것은 아닌가.
첫 취업이 1년 늦어지면 첫 월급도 1년 늦어진다. 경력을 쌓는 시기와 독립하는 시기가 밀리고 자산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간도 뒤로 간다. 그래서 청년의 취업 지연은 고용통계 한 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가 늦게 출발하는 문제다.
그렇다고 중장년에게 청년을 위해 일찍 나가라고 할 수는 없다. 초고령사회에서 더 오래 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정년과 연금 사이에는 소득 공백도 존재한다. 기업 역시 오랜 시간 축적한 숙련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나이만으로 내보내는 것이 항상 이익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정년연장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오래 일하면서 다음 사람도 제때 들어오게 할 것인가에 가깝다.
그렇게 보면 청년고용정책의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일자리를 몇 개 만들었는지 발표하고 지방정부는 청년정책 참여자와 청년센터 이용자를 세지만, 청년에게 더 중요한 숫자는 첫 직장을 얻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그리고 그 첫 직장이 다음 경력으로 이어졌는지일 수 있다.
기업이 신입보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미 일을 배운 사람을 채용하면 교육비용과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하면 노동시장에는 이상한 모순이 생긴다.
경력이 있어야 취업할 수 있는데, 취업하지 못하면 경력을 만들 수 없다.
그 모순을 청년 개인에게 해결하라고 맡겨놓고 사회진입이 늦어진다고 걱정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청년고용정책의 중심을 ‘일자리 몇 개’에서 ‘첫 경력 몇 개’로 옮길 필요가 있다. 기업이 청년을 처음 채용하고 교육하는 비용과 위험을 사회가 일부 나누고, 단기 인턴을 몇 명 고용했는지보다 실제 채용으로 이어졌는지, 2년과 3년 뒤에도 경력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성과로 평가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방에서는 이 문제가 더 절박하다. 청년지원사업 신청자가 몇 명인지보다 지역 대학 졸업생 가운데 몇 명이 그 지역에서 첫 직장을 얻었고, 그 가운데 몇 명이 3년 뒤에도 남아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스물다섯에 떠나는 사람이 많다면 왜 그 나이에 떠나는지를 찾아 일자리와 임금, 산업구조를 들여다보고, 서른을 전후해 이탈한다면 주거와 가족 형성, 생활환경까지 원인을 넓혀야 한다.
청년이 끝나는 나이를 관리할 것이 아니라 청년이 떠나는 나이를 관리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을 넓히면 세대정책의 모양도 달라진다. 사람의 인생에는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있고, 첫 직장에서 다음 경력으로 옮겨가는 때가 있다. 중년에는 다시 배우거나 직업을 바꿔야 할 때가 찾아오고, 언젠가는 노동시장에서 물러나 연금소득으로 넘어간다.
행정에서는 청소년정책, 청년정책, 중장년정책, 노인정책으로 나뉘지만 한 사람의 삶에서는 순서대로 찾아오는 시간이다.
그래서 국가가 관리해야 할 것은 나이의 경계만이 아니라 삶의 전환점이어야 한다.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넘어갈 때 떨어지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첫 직장은 다음 경력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중년의 직업전환에서도 다시 시작할 길이 있어야 하며 퇴직에서 연금으로 넘어가는 사이에는 소득절벽을 줄여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각각의 나이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전환점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굳이 마흔다섯을 청년이라고 부를 이유도 없다. 40대가 어렵다면 그 시기에 필요한 생애전환정책을 만들면 되고,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면 중장년을 일찍 밀어내는 대신 임금과 직무, 신규채용의 구조를 함께 바꾸면 된다. 청년을 지원하기 위해 중장년의 시간을 빼앗을 필요도 없고, 중장년에게 시간을 더 주기 위해 청년의 시작을 늦출 이유도 없다.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나이를 이야기했다. 책임지는 나이는 빨라질 수 있고 정년은 늦어질 수 있으며, 청년이라고 불리는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이를 고치고 있다.
그런데 네 번의 질문 끝에 남는 것은 몇 살인가가 아니다.
그 나이에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아이에게 책임을 요구하기 전에 충분히 보호했는지를 물어야 하고, 청년에게 자립을 요구하려면 일을 시작할 기회부터 열어줘야 한다. 중년에게 더 오래 일하라고 한다면 다시 배우고 직업을 바꿀 길이 있어야 하며, 고령자에게 노동을 권한다면 존중받으며 일하다 제대로 물러날 수 있는 시간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세대정책의 새로운 시간표가 되어야 한다.
중장년에게 더 오래 일할 권리를 주면서 청년에게 더 오래 기다리라고 하지 않는 사회, 오래 일하는 것과 제때 시작하는 것이 서로의 몫을 빼앗는 일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말이다.
오래 일하는 사회와 제때 시작하는 사회는 반대말이 아니다.
둘을 동시에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구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설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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